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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보통의 이야기/2018년

홋카이도에서

이번 여행을 오면서, 이제 다음 휴가때에는 당분간은 해외여행을 멈추고 다른 재미있는 일을 찾아볼 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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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번 여행이 어쩌면 나의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며 떠나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역대급 스펙타클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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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7의 강진후에 여진은 몇번이나 온 것인지 셀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마치 퐁퐁(서울인들은 방방이라 하나?)을 타다 내린 듯, 내가 땅위에 서 있는 것인지 바다위의 큰 배위에 서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
나는 땅을 밟고 서 있지만, 이제는 내가 밟고 있는 땅이 더 이상은 단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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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강진이 지나간 노보리베츠의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고, 내가 바라보는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아름다웠다. 끝 없는 수평선, 그림같은 하늘과 초록 숲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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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 이제 그 끝 없는 바다에게서 무한한 공포심도 느끼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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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에 모여있던 일본인 노부부와, 일본인 대학생 커플, 그리고 나는 창밖에 펼쳐진 경관을 보며, 잇츠 뷰티풀이라는 할머니의 말한마디에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는데, 새벽의 그 난리통을 겪고 이토록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자연에 대해 그 웃음말고는 무엇도 형용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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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이 작은 존재이며, 우리의 고민들이란 얼마나 쓰잘데기 없이 작은 것들인가. 인간 또한 하나의 소우주이며, 복잡한 그 자체라 할만하지만, 자연 앞에 서면 그 모든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진다. ⠀⠀⠀⠀⠀⠀⠀⠀⠀⠀⠀⠀⠀⠀⠀
한편으론, 인간의 질긴 생명력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게 되는데,
함께 묶었던 한국 국영방송의 기자 분이, 본사의 급작스런 연락을 받고선 여행중임에도 갑작스레 기사 준비를 하는 모습에서, 재난이든 뭐든 모른체 즐겁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 도와가는 모습들에서, 나는 일종의 대단함들을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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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대피소라는 곳에 왔다. 대학생때 여행을 가, 잘 곳 없는 곳에 다다라 텐트를 쳤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
어쩌면, 나는 이렇게 여행하고 살아갈 운명은 아니었을까. ⠀⠀⠀⠀⠀⠀⠀⠀⠀⠀⠀⠀⠀⠀⠀
내년에도 또 여행을 와야겠구나.
생각하며, 내일은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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